2013-08-09

8월 9일

1984년_아이언 메이든, 냉전의 벽을 뛰어넘다.



아이언 메이든
「Live After Death」
  1984년 8월 9일, 록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펼쳐진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역사적인 World Slavery Tour의 막이 올랐다.
  1984년 8월 9일 시작되어 이듬해 7월 5일까지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된 이 역사적인 투어는 미국, 영국은 물론 독일,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펼쳐졌는데 특히 이 투어가 각별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지역 외에도 폴란드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 국가들에서도 공연이 이루어짐으로써 서방의 헤비메탈 밴드가 동구권 국가에서 공연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다(록 밴드로는 1967년 롤링 스톤즈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다).
  주다스 프리스트와 함께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의 쌍두마차로 군림했던 아이언 메이든은 이들의 대표작인 「The Number Of The Beast」등의 명반과 함께 1980년대 헤비메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상의 밴드이기도 하지만 또한 냉전의 시대였던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동구권 투어의 신호탄을 올림으로써 음악을 통한 이념장벽 붕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주인공으로도 기억됨이 마땅하다.
  그 역사적인 World Slavery Tour가 1984년 8월 9일, 폴란드에서 막이 올랐다. 1985년 발매된 라이브의 명반 「Live After Death」는 바로 그 World Slavery Tour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앨범이다.


아이언 메이든



1995년_최후의 얼터너티브 밴드가 사라졌다


그레이트풀 데드
「American Beauty
  그레이트풀 데드(Greatful Dead)는 너무나 미국적인 밴드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미국에서 가지는 영향력이나 미국에서 받았던 사랑에 비해 국내에서는 홀대받는 대표적인 그룹이다. 1960년대 후반의 히피즘과 샌프란시스코 사이키델릭 록 씬의 선봉에 있었던 그레이트풀 데드는 이후에도 시대를 초월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밴드였다. 포크와 컨트리, 블루스가 적절히 조합된 이들의 음악은 가장 미국적인 음악으로 평가받았으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미국의 영웅이었다.
  그레이트풀 데드를 이끌었던 록의 거장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1995년 8월 9일,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의 사망과 함께 그레이트풀 데드는 사실상 자연 소멸됐다. 제리 가르시아가 사망하자 미국 언론은 제도권 사회에 저항하는 마지막 밴드가 소멸했다고 애석해 했으며 특히 '뉴스위크'지는 '최후의 얼터너티브 밴드가 사라졌다'고 논평했다.
그레이트풀 데드
제리 가르시아



[365일 팝음악사], 돋을새김, 정일서 지음]



1. 우선 아이언 메이든에 대해서는 지난 8월 7일 브루스 디킨슨관련 글에서 조금은 언급한적이있다. 저 영상은 글에서 나와있는 것처럼 World Slavery Tour의 일부이며 그들은 노래곡처럼 Ace High였다. 역시 음악은 이념을 뛰어넘는 위대한 힘을 지닌 것이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저 동구권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은 구 소련의 억압과 구속을 아이언 메이든의 노래를 듣고 해방감으로 승화시킨 것임이 분명하다.

2. 그레이트풀 데드는 사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밴드이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에는 적나라한 포크와 컨트리 그리고 미국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정서가 들어가있는 것 같다. 마치 우리음악에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미국인들 또한 그들의 노래를 듣고 가장 미국적인 밴드를 잃었다는 것을 개탄한 것은 크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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