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찰리 채플린, 백남준 그리고 비빔밥



  지난 주, 백남준아트센터에 방문하여 전시를 보지 못한 까닭에 심기일전하여 2월 17일 일요일 그곳에 재방문하였다. 다행히도 전시는 진행중. 꾿.
백남준『미디어 'n' 미데아』展 19.02.16~20.02.20

  그의 작품들을 진실로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이 전시에서 미스터 백형님은 작품들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전시실에 들어갔다. 총 17개의 작품 중 나의 사유가 나래가 펼쳐진 작품들이 몇 가지 있었으나 가장 감명 깊게 본 '<찰리 채플린> 2001년 作'에 대한 생각을 몇 글자 이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

<Charlie Chaplin>
2001, 4 CRT TVs, 4 radio's cases, 1 LCD moitor, 2 bulbs, 1 channel video, color, silent, 185x152x56 cm

  위의 사진이 그의 작품이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총 5대의 모니터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와 그의 모습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손처럼 보이는 2개의 전구는 그의 영화에서 가스등을 연상시키는 구형 전구가 붙어있으며 이는 마치 흑백영화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찰리 채플린은 그의 영화 <황금광 시대>,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등과 같은 영화에서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인간의 소외의 과정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그의 영화들에서 기계문명과 자본부의 사회의 도구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은 순전히 하나의 부품의 역할로 등장한다. 그는 처절하게 이러한 역설의 미학을 통하여 물질만능주의와 기계화 시대에 '인간의 소외'. 즉 '인간성 상실'에 대한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엄연한 개인의 자율성 침해로 인식될 수 있으며, 크게 생각한다면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내에서 벌어지는 엄연한 폭력이다. 개인의 자율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채 철저하게 사회적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모습은 처참히기까지 하다.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등장하는 '빅브라더'의 모습과 아주 동일하다. '빅브라더'는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인해 철저하게 인간들을 감시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빅브라더의 감시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간들의 개인의 자율성은 처참하게 파괴되고, 비판적인 사고 또한 마비시킨다.
  이와 관련해서 서구의 많은 철학자들은 그 폭력성에 대해서 고발을 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인간이 비판적 사고를 해야만 하는 많은 사상들이 뿜어져 나왔다. J.P.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그러하고 M.푸코의 권력담론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의 미스터 백 형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기술과 인간은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인간이 지배가 되는 것이 아닌 그 문명으로 인해 인간의 생활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더불어 기술을 대하는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 그에 대한 찬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러한 생각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으로 꼽히는 <찰리 채플린>은 기존의 찰리 채플린에게 하는 하나의 답변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들 속에는 끊임없는 조화와  정체성의 해체 등이 실질적인 주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가 서울, 도쿄, 쾰른, 뉴욕을 오가는 코스모폴리탄으로 삶 자체가 자신이 갖고 있는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정체성을 해체하고 그것에 조화를 이루어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융화였던 것이다. 또한 동서양의 격식없는 동등한 시선에서의 만남, 음악과 예술의 조화, 모든 지구는 하나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각기의 문화와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은 동등하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것은 우리나라 전통의 음식인 '비빔밥'과 매우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의 융화, 음양오행의 진리가 비빔밥 속에는 담겨져 있으니까. 비빔밥 속에는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의 삶이 있으니까. peace. 

ps.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려하니, 처참하게 써지질 않는다. 다시 화이팅.

2019-02-10

반가워요! 미스터 PAIK!


N129_listening for music 1N129_listening for music 1
 제작연도 / 1963 작가 / 만프레드 몬테베 타입 / Photography Credit Line / 백남준아트센터. 사진:만프레드 몬테베



  유년시절 웅진 출판사에서 나온 월간잡지 '생각쟁이'에서 본 것이 그와의 첫 마주침이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예술가 한 명으로 소개가 되었었다. 그와 관련된 글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 별 '희한한 사람'이 다있네라는 것이 어린 시절의 생각이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30대로 접어든 지금 예술에 지대한 관심이 생긴 나는 문득 그에 대해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리고 오늘 용인에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하였다. 하지만. 휴관. 다음 전시를 위해서 분주하게 준비하는 전시장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책을 샀다. 그와의 두번째 마주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남준. 우리나라가 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디오아티스트. 비디오아트라는 미술적 사조를 창조한 사람. 20세기에 기술의 총체적 집아라고 평가되는 텔레비전을 가지고 스스로의 예술적 사관과 철학을 철저하게 펼쳐나간 사람이다. 신기하다. 매일 보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미술의 표현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동양과 서양의 융화,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맺음, 타자성의 이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심어린 고찰, 그리고 그 속에서 뿜어나오는 역설적인 사고방식들.  그가 죽은지 10년은 훨씬 더 지났지만 그에 관한 자료들은 한 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 사람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철학적 자양분이든, 문화인류학적 세계관이든, 혹은 미학이든.

  사실 오늘 많은 사유를 하고 한 편의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에 대한 관심이 나에게 지대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생각과 성찰, 그에 대한 업적을 생각하고 스스로의 사유를 이곳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참으로 기묘한 생각이 들고,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이 그닥 쉽지않다고 다시금 느끼는 하루이다. 우선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반가워요 미스터 PA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