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탄생, 생성 혹은 제조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지극히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인간 또한 그렇다. 누군가가 태어나는 자가 있으면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가 있기마련. 탄생과 죽음의 메타포 속에서 이 소설은 극적인 만남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상반된다는 것이 서로를 마주치는 순간 그 관계 속에서 마주치는 말이나 글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something). 참으로 낯설다. 그리고 어렵다.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문득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우리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사회 속에 약속인 '인간존엄성'에 대한 생각. 차마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라는 저서에서 이야기했던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만 한다'고. 그 책에서 이 말이 담고있는 명확한 의미는 어떤 누구도 파악할 수 없는 터. 왜냐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함부로 '죽음'에 대해서 말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탄생'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있는가? '탄생'에 대해서도 지극히 그 기억은 까마득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살바도르 달리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매번 '나는 태아였을 때를 기억한다'라고 큰 소리치던 광기에 젖은 천재화가였으니까. 그렇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그것의 느낌이 어떠한지, 어떠한 구체적 경험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신뿐일 것이다.
삶의 대한 모멸감., '죽음'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그 자세는 분명히 그릇된 자세일터이지만, 그닥 삶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간간히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삶'의 반대어는 '죽음'이니까. 그러나 이 책에서 나와있듯 이 세상에서 '절대 믿어선 안될 것은
삶을 부정하는 인간의 나 자살할 거야. 란 떠벌림이다. 그런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알콜릭 정도가 적당하다. 삶을 인정하지 않고선 실제로 자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랄까. 결혼을 한 인간만이 이혼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p.16)'
스스로 세상의 의욕없이 자살을 하기위해 문을 여는 사람과 굳이 살고싶지 않은 세상사이지만 마지못해 이 세상에 자궁이라는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와 마지못해도 살아야만 한다는 '의지'와의 대결이다. 자극으로써 충동을 억제하고 의지와 의지와의 대결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것은 후자이다. 본질적으로 탄생이 없었다면 죽음 또한 맞이할 수 없을 터.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동일선상에서의 의미없는 충돌일 뿐이다. 무엇이 자명한 진리인지는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쩝.
살바도르 달리 『포르트 리가트의 성모』(1949) |
'바다를 여자의 자궁과 동일선상에 배치한 화가에 살바도르 달리가 잇다. 영문 모를 이 세계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시계를 엿가락처럼 늘여 빼고, 달걀에 자욱이 달라붙는 개미떼에 집착하면서 일생을 보냈던 이 화가가 소년시절의 어떤 꿈에서 바다와 어머 가 성모로, 자신이 그 태아인 성자로 사각의 요람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어머니를 껴안았을 때의 그 충일감이 그제야 자신을 객관화시켜 준다는 사실을 섬광처럼 깨달았던 것이리라. 그것은 또 탄생과 죽음이 동일선상에 놓인다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위의 간단한 단락의 글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인 이제하 선생의 글이다. 그는 바다와 여자의 자궁을 동일 선상에 배치한 화가라고 이야기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살바도르 달리는 아내인 갈라를 맹목적이고 유아적으로 사랑을 했다. 그에게 있어서 갈라는 뮤즈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달리는 결국 자신 또한 갈라의 자궁에서 태어난 것이며 즉, 하나의 문을 열고 이 세계에 나왔음을 상징한다. 글에서의 '아침'의 의미는 살바도르 달리의 '바다'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들을 깨우고 하루의 활기참을 시작하는 우리 마음 속의 잔잔한 바다와 같은 지극히 고요한 울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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