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의 인생을 살면서 횟수로 치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지 싶다. '무진기행'.
무진기행에 관해서 하고픈 말은 무척이나 많다. 이 글을 통해서 레포트도 작성도 해보았고, 아마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라는 작품과 연계를 해서 나름의 해석을 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는 바르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스투디움'이라는 개념과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 스투디움 : 사진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스토리, 즉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무언가
- 푼크툼 : 한 장의 사진을 다른 사진이 아닌, 바로 그 사진, 그 자체로 만드는 것은 무의식의 에너지를 집약하고 있는 무언가
이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소설 '무진기행'에 관해서 논했던 적이 있다. 즉 무진기행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읽은 구절들, 눈으로 직접적으로 관찰한 글자들은 '스투디움'이고 그 안에 그 문장이게끔 하는 뭔가의 아우라(?)라고 할까. 그것을 느끼게 해준 것이 '푼크툼'이다. 사실 이 '무진기행'이라는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푼크툼'의 개념으로 뒤덮혀 있었음을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개 중의 굳이 뽑자면 아마도 마지막 구절이었지.
-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 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을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무진에서 만큼은 솔직하게 하인숙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썼고 이에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다짐까지도 적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것은 무진을 떠나면서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서울로 돌아간다. 이는 현실로 돌아감을 뜻하고 꿈에서 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숙을 원하고 함께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현실이 깨우쳐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그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복잡함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사랑을 하나 실현될 수 없는 사랑, 마음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결국에는 전하지 못함으로 귀결된다.
간결한 문체와 사람의 감수성을 뒤범벅 시켜놓는 천재 청년 작가였던 김승옥. 주옥같은 문장을 쓰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지금 종교로의 귀의이후 뚜렷한 행적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립다. 그가 일필휘지로 글을 쓰던 그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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