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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 693기 1대대 3중대 1소대 훈련병번호 1번부터 12번 |
2013-08-30
20100830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정확히 오늘. 나는 군입대를 했다. 하늘을 나는 가장 높은 힘. 대한민국 공군 병 693기로. 입대할 때와 지금이 다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몸무게는 그때가 훨씬 많이 나갔던거 같고, 마음가짐? 그래. 마음가짐이 달라졌구나. 더욱 나태와 게으름을 즐기게 되었고, 효? 머릿속에는 충만하지만 몸으로 실천을 안하고 있고,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흡연에 있어서 저리가면 서러울정도로 담배를 증오하였는데...지금은 담배를 태우고, 그리고 그 담배에 내가 물리는 느낌이고. 참. 그렇네. 그래도 그래도. 다시금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참 알쏭달쏭하고 기묘한 인생이야. 이 노래나 듣자. 아 그리고 같이 훈련받았던 내 동기들은 지금쯤 뭣들 하고 있을까? 연락이 잘 안되지만. 뭐 몇명은 부대에서 조금씩은 했는데 부사관이 된 녀석도 있었고, 그냥 나처럼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을테고, 그 당시 30살이었던 형님은 지금 잘 계시나 꽤나 궁금한데. 자대가면 연락 꼬옥! 하자고 그랬는데, 결국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되었군. 쳇. 오늘이라도 해야지 늦지않았으니 말이야. peace!
2013-08-23
『페북허세7』
절기로 처서인 오늘 말그대로 밤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여름내내 지루함과 옹색함으로 눈을 부스스비비며 일어났다. 마지못해 부모에게 투정부리고 터덜터덜 집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문다. 그리고 푸르디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뱉는다. '시발, 역겨운 하루가 또 시작이군.' 무더위에 지쳐버린 나의 심신과 정신은 이미 이 세상을 뜬지 오래다. 그동안 너무 더웠다. 태양은 하늘 끝에서서 마지막 발악하는데 나에게는 치졸하게 발악조차할 열정도 없었다. 정력(?)따윈...시발. 그렇게 여름이 갔다. 여름이 갔다. 여름이 갔다. 그리고 다가온다. 가을이. 가을이 오면 좀 달라질까. 그러면 더워서 열정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런 핑계조차 그리웁다.
- 박정우,『페북허세7』
멍청함(stupid)
요즘들어 심히 멍청해진 느낌이다. 이 멍청해졌다는 것은 다분히 현실의 행동에서 뿐만아니라, 생각마저 둔해졌다는 의미이다. 진짜 생각이 나지않는다. 재기발랄했던 상상력도 전혀 동원되지 않는다. 답답하다. 왜. 왜. 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그 힘 자체가 매우 뒤쳐져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무언가 글을 쓰고 나면 만족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요새는 전혀 그렇치 못하다. 답답하다. 답답하다. 왜 고통과 시련은 한 번에 밀려오는 것일까. 숨 막힌다. 젠장. 역겹다. i'm not a boy, i'm not a gentleman. just stupid. disgust life.
2013-08-22
가자, 장미여관으로! -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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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장미여관으로 초판 표지 |
'장미여관'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다. 장미여관은 내게 있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나그네의 여정(旅程)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다. 우리는 잡다한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 - 그곳이 바로 장미여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러브 호텔'로서의 장미여관, 붉은 네온사인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곳, 비밀스런 사랑의 전율이 꿈틀대는 도시인의 휴식공간이다.
우리는 진정한 안식처를 직장이나 가정에서 구할 수 없다. 직장의 분위기는 위선적 체면치레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가정은 겉보기엔 단란하지만 사실상 갖가지 컴플렉스들이 럭혀서 꿈틀대는 고뇌의 장(場)이다. 가족관계란 싫든 좋든 평생 묶여서 지내야 하는 굴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잠깐만이라도 모든 세속적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어디론가 도피함으로써 자유를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장미여관 - 그 달콤한 음탕과 불안한 관능이 숨쉬는 곳, 거기서 우리는 비로서 자연의 질서와 억압에 저항하는 '관능적 상상력'과 '변태적 욕구'를 감질나게나마 충족시킬 수 있고, 우리의 일탈욕구(逸脫欲求)를 위안받을 수 있다.
이 시집의 표제로 삼은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쓴 1985년 여름을 전후하여 내 시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는 유미적 쾌락에의 욕구와 현실상황에 대한 고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여인의 긴 손톱은 섹시하다. 그러나 그런 손톱은 '민중적 손톱'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공연히 '민중적 고뇌'로 괴로워하는 척하면서 지식인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초기작에서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는데 요즘 작품은 너무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해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나로서는 그 '치열한 고뇌의 정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게만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는 솔직하게 발가벗지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발가벗는 척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런 지식인의 위선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런 단서나 변명 없이도, 여인의 긴 손톱은 아름답고 야한 여자의 고혹적인 관능미는 나의 상상력을 활기차게 한다. 모든 사람들은 다 민중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다 귀족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귀족들만이 누렸던 감미로운 사치와 쾌락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지배계급에 대한 적의(敵意)는 쾌락에 대한 선망일 뿐, 숭고한 평등의식의 소산은 아니다.
누구나 잘사는 사회, 누구나 스스로의 야한 아름다움을 나르시시즘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일을 안해 '희고 고운 손'을 질투한 나머지 모든 여성의 손을 '거칠고 못이 박힌 손'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모든 여성의 손을 다 '길게 손톱을 기른 화사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괴로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즐거운 노동', 이를 테면 화장이나 손톱기르기 등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노동에서 진짜 관능적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미주의에 바탕을 둔 쾌락주의, 또는 복지지상주의(福祉至上主義)가 요즘의 내 신조라면 신조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를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인류의 역사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적 실천을 가능케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상상이 설사 '생산적 상상'이 아니라 '변태적 공상'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시는 꿈이요, 호나상이요, 상상의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하는 행위조차 윤리나 도덕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초라하고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시를 통해서 사라으이 배고픔과 새디스틱한 본능들을 대리배설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격노하는 본능과 위압적인 양심 사이에 평화로운 타협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여 현실 속의 나는 여전히 외롭다, 외롭다. 진짜 관능적인 사랑, 진짜 순수하게 육체적인 사랑, 모든 이데올로기적 선입관과 도덕적 위선을 떨쳐 버리고 솔직하게 발가벗을 수 있는 사랑이 내 앞에 펼쳐지기를 나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누가 나의 이 허기증을 달래 줄 수 있을는지? 그 어느 날에나 나는 상상 속의 장미여관이 아니라 진짜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장미여관에 포근하게 정착할 수 있을는지?
1989년 4월 마광수 (책 머리에)
광마선생을 누가 퇴폐적이라고 이야기했던가, 그의 생각만은 지극히 고고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순수하다. 위의 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도덕적 위선과 억압을 꿈 속에서나마 벗어던지고 싶어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덕적 위선과 억압들을 꿈속에서 조차 당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단 말인가. 그 어떠한 문학가가 이보다 솔직할 수 있으리오. 표현의 자유조차 이 땅에는 없다는 말인가. 그에 대해서 비판은 가능치만 비난은 하지말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우리는 정확히 모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마의 시 중 '가자, 장미여관으로!'가 작성된 시기를 전후로 한 시 2편을 읽어보자. 초기작에서 그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에 관한 작품들을 여러 선보였는데, 이것이 작가 스스로에게 창피함을 주었다면, 당연히 그러하다면 위선따윈 떨쳐버리고 순수한 '나'로 돌아가는 작업이 옳다고 생각한다. 순수해지자. 눈치보지말며.
가자, 장미여관으로! (1985)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시,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체 주절주절
커핀은 초이스 심포니는 카라얀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
가자, 장미여관으로!
블루스도 싫어 디스코는 더욱 싫어
난 네 발냄새를 맡고 싶어, 그 고린내에 취하고 싶어
네 치렁치렁 긴 머리를 빗질해 주고도 싶어
네 뾰족한 손톱마다 색색 가지 매니큐어를 발라 주고도 싶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러브 이즈 터칭
러브 이즈 휠링
자유에 (1973)
우리들은 죽어가고 있는가, 우리들은 살아나고 있는가. 우리들의 목숨은 자라나는 돌덩이인가, 꺼져가는 꿈인가. 현실의 삶은 죽어가는 빛인가, 현실의 죽음은 뻗어가는 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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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마 마광수 |
2013-08-19
무진기행 - 김승옥
현재까지의 인생을 살면서 횟수로 치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지 싶다. '무진기행'.
무진기행에 관해서 하고픈 말은 무척이나 많다. 이 글을 통해서 레포트도 작성도 해보았고, 아마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라는 작품과 연계를 해서 나름의 해석을 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는 바르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스투디움'이라는 개념과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 스투디움 : 사진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스토리, 즉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무언가
- 푼크툼 : 한 장의 사진을 다른 사진이 아닌, 바로 그 사진, 그 자체로 만드는 것은 무의식의 에너지를 집약하고 있는 무언가
이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소설 '무진기행'에 관해서 논했던 적이 있다. 즉 무진기행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읽은 구절들, 눈으로 직접적으로 관찰한 글자들은 '스투디움'이고 그 안에 그 문장이게끔 하는 뭔가의 아우라(?)라고 할까. 그것을 느끼게 해준 것이 '푼크툼'이다. 사실 이 '무진기행'이라는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푼크툼'의 개념으로 뒤덮혀 있었음을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개 중의 굳이 뽑자면 아마도 마지막 구절이었지.
-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 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을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무진에서 만큼은 솔직하게 하인숙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썼고 이에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다짐까지도 적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것은 무진을 떠나면서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서울로 돌아간다. 이는 현실로 돌아감을 뜻하고 꿈에서 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숙을 원하고 함께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현실이 깨우쳐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그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복잡함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사랑을 하나 실현될 수 없는 사랑, 마음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결국에는 전하지 못함으로 귀결된다.
간결한 문체와 사람의 감수성을 뒤범벅 시켜놓는 천재 청년 작가였던 김승옥. 주옥같은 문장을 쓰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지금 종교로의 귀의이후 뚜렷한 행적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립다. 그가 일필휘지로 글을 쓰던 그 모든 것이.
2013-08-14
까르보나라
왠지모르게 오늘은 너의 그 느끼함이 그리웠어. 그리고 너를 만났고, 오랜만에 만나서 나는 신이 났었지. 그리고 너를 먹었지. 너의 크림소스가 나의 식도와 일치를 이루는 순간 이미 나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지. 원래 잘 먹지않는 스파게티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너와 함께라 정말 행복했어. 그래서 내일은 운동을 할거야. 그래도 고마워. 지금 또 그리워졌는걸. 너가 보고싶은걸. 다음을 기약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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