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1

7월 21일

1947년_캣 스티븐스라 불렸던 유서프 이슬람 출생

캣 스티븐스
「Foreigner」
  1947년 7월 21일 캣 스티븐스(Cat Stevens)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리스인 어머니는 스웨덴인. 런던에서 멀쩡히 대학까지 마친 그가 켈틱 민요를 포크로 녹여낸 <The morning has broken>, 후일 미스터 빅의 리메이크로도 히트하게 되는 <Wild world> 등을 히트시키며 포크 스타로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서는 그 어떤 극적인 변신의 단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그야말로 충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1978년에 캣 스티븐스는 갑자기 이슬람에 귀의했고 이름마저 아예 유서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제목도 의미심장한 「Back To Earth」를 마지막 앨범으로 세상에 던져놓은 채 홀연히 사라졌다. 물론 비틀스를 비롯한 많은 서양 팝 스타들이 인도 사상에 심취한 예도 있었고 비근한 예로는 비래드 피트나 리처드 기어 등 유명 배우들이 티베트 종교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캣 스티븐스만큼 갑작스럽고 과격하게 사라져버린 이는 없다. 한순간에 모든 미련을 벗어 던지고 팝계를 떠난 그는 철저한 은둔 생활에 돌입했는데 심지어는 그 뒤로 그를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는 정말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현재 시점으로 말한다면 그는 캣 스티븐스가 아니라 유서프 이슬람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살짝살짝 활동을 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캣 스티븐스 대신 유서프 이슬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음악 스타일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자신의 옛 조국 영국에 대해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때 이슬람계 테러 용의자 선상에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던 그가 말이다.

[365일 팝음악사], 돋을새김, 정일서 지음]


사람은 때로는 있는 모든 것을 두고 홀연히 떠날줄도 알아야 한다. 미스터 빅의 <wild word>의 원곡자라니. 역시 처음안 사실이다. 오늘은 이 원곡을 들어봐야겠다. 홀연히 떠나는 것도 하나의 용기이다. 과연 이 세상에는 용기있는 자들이 몇명이나 될까? 물론 나도 용기가 없지만 말이다. 

2013-07-20

북한강 자전거 종주 대모집

싸이클왕 렌스 박과 함께 북한강 자전거 종주 하실 분 대모집합니다.
당일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날짜는 아직 미정이고 주중내지 주말 날 하루잡아 갈 예정입니다. 남녀노소 불문 두 다리와 자전거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
북한강 코스는 약 133km정도이며 야탑에서 전철을타고 광나루 지점부터 시작하여 팔당대교를 건너 북한강코스 종주를 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렌스 박 경력 ; 전국 11626번째 국토종주자(인천~부산 정복)

7월 20일

1947년_라틴 록의 최고봉 카를로스 산타나 출생

산타나
「Abraxas」
  산타나(Santana)는 원래 그룹의 이름이지만 사실상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 개인과 동일시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카를로스 산타나는 산타나의 처음이자 끝이다. 라틴 록의 선구자 카를로스 산타나가 1947년 7월 20일 멕시코의 아우틀란 데 나바로에서 태어났다. 1962년 가족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그는 1966년 산타나 블루스 밴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1967년 그룹의 이름을 산타나로 바꾸었다.
  1969년 우드스탁 무대에서 <Soul sacrifice>를 연주해 주목받은 산타나는 <Jingo>, <Evil ways> 등이 수록되어 있었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으로 라틴 록의 도래를 선언했다. 1970년 발표된 2집 앨범 「Abraxas」는 라틴 록의 전형을 보여준 라틴 록 최고의 마스터 피스. <Black magic woman/Gypsy queen>, <Oye como va>, <Samba party> 등 라틴 록의 명곡들이 수록된 「Abraxas」는 세월이 흘러도 향기를 잃지 않는 라틴 록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30년 넘게 산타나는 약간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라틴 록 최고봉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그랬던 산타나였기에 그가 20세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키 마틴에서 촉밝되어 마크 앤소니, 제니퍼 로페즈로 이어져 내려온 라틴 팝 전성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롭 토머스 등 많은 후배들의 도움을 받은 산타나는 앨범 「Supernatural」과 싱글 <Smooth>를 앞세워 빌보드 차트와 그래미를 석권하며 자신이 왜 라틴 록의 지존인지를 확시히 보여주었다.

[365일 팝음악사], 돋을새김, 정일서 지음]


산타나의 25집「Supernatural」은 200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을 석권한 가치있는 앨범이다. 나이에 걸맞지않게 이 시대의 음악을 정확히 파악한 앨범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용필형님의 「Hello」가 생각이 난다. 그렇다. 그들은 전설로써 남아있는 것이다. 영광이다. name value를 뛰어넘는 말하지 못할 아우라를 지닌 자가 됩시다. 우리들. 모두.

2013-07-19

7월 19일

1976년_짙은 자주빛, 그 빛을 다하다

딥 퍼플
「Deep Purple In Rock」
  1976년 7월 19일 하드록의 전설 딥 퍼플(Deep Purple)이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1968년 데뷔한 이래 「Deep Purple In Rock」, 「Fireball」, 「Machine Head」 등 하드록의 역사에 빛나는 명반들을 줄줄이 선보이며 최강의 그룹으로 군림했던 딥퍼플의 고고한 짙은 자주빛이 그 빛을 다한 것이다.
  딥 퍼플의 역사는 사실상 하드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딥 퍼플은 키보디스트 존 로드(Jon Lord)가 그룹내 음악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초창기에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가 주도권을 잡은 이후로는 분명한 하드 록의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하드 록을 대표하는 명곡인 <Smoke on the water>, <Highway star>, <Child in time>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레드 제플린에 필적하는 하드 록의 최고봉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런가 하면 딥 퍼플의 역사는 멤버들의 이합집산의 역사다. 그만큼 멤버의 변화와 부침이 심했다는 얘기다. 보컬리스트의 변화에 따라 로드 에반스(Rod Evans)가 재적했던 1기와 이언 길런(Ian Gillan)이 재적했던 2기, 그리고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이 재적했던 3기로 크게 구분되는 딥 퍼플의 역사 속에서 그밖에도 이언 페이스(Ian Paice), 닉 심퍼(Nick Simper), 글렌 휴즈(Glenn Hughes), 그리고 해산 전 딥 퍼플의 마지막 기타리스트로 딥 퍼플 해산 직후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천재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Tommy Bolin)에 이르기까지 딥 퍼플의 역사를 수놓았던 얼굴들의 면면은 하나하나가 모두 당대 최강의 테크니션들이며 하드 록의 역사를 빛낸 찬란한 별들이다.
  하드 록 역사의 계보를 그려보아도 딥 퍼플이 없이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딥 퍼플을 거쳐간 이들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했던 그룹들을 빼놓고는 도무지 얘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리치 블랙모어가 딥 퍼플 탈퇴 후 이끌었던 레인보우(Rainbow)와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주도했던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는 명백히 딥 퍼플의 계보를 잇는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은 그룹이다.
  1976년 7월 19일, 화려했던 전성기를 마감하고 일단 날개를 접은 딥 퍼플은 8년이 지난 1984년 그룹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2기 멤버들을 규합해 다시 필드로 돌아왔지만 전성기를 재현할 수는 없었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딥 퍼플도 예전의 딥 퍼플은 아니었다.

[365일 팝음악사], 돋을새김, 정일서 지음]


형님들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지만, 나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오. 이언 길런 형님의 목소리로 듣던 <highway star>가 아직도 귓속에서 맴맴돌고, 직진하듯 뭔가 쭉쭉 나아가는 멋진 사람이 되겠수다.


2013-06-27

『페북허세4』

눈이 나빠질 것을 각오하고 누렇디 누런 책을 잡아들고 침을 묻혀가며 한 장씩 한 장씩 넘긴다. 기억의 파편들을 도려내듯. 기억에 희미해짐은 어느덧 당연해지고 추억은 점점 더 아련해진다. 더럽다. 더럽다. 더럽다.

시비조로 누군가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으나 담담히 무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무관심을 애써 감추려, 관심이 있는 척을 한다. 지겹다. 지겹다. 지겹다.

흰 눈은 바라지도, 바란 적도 없지만, 다만 약간의 바람이 있었다면 연탄재가 묻은 회색 눈사람이라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애국심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던 일방적인 녀석들은 어느덧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싸늘하다. 싸늘하다. 싸늘하다.


                                                                      - 박정우,『페북허세4』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2013-05-18

『페북허세3』

구질구질 추적추적 내리는 이 비는 과연 시시하지도 콜콜하지도 않은 이 세상사에 어떠한 회한이라도 있는 듯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살며시 조용히 왔다가지는 못할망정 베프인 바람을 데리고와 봄기운에 기대에 찬 사람들의 윤기있는 얼굴과 옷차림을 망쳐놓는건가... 그것은 왜 우리에게 손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스마트폰 대신 우산을 들게끔 강요하는가. 이 비바람마저 영악해진 인간의 장난감인 스마트폰 너를 부러워하여 혼내주려고 다가오는 것인가. 아날로그 아날로그 아날로그 이 4글자를 오늘은 생각해 본다.

                                                                      - 박정우,『페북허세3』 

2013-05-01

『페북허세2』

밥집같지도 않은 밥집에 들어가 그곳의 김치를 먹어 밥집의 실력을 
평가하라는 말도 무색하게 뜨거운 가슴과 정열로 뒤덮은채 우리의
20살은 그곳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났었다. 짬뽕국물 하나에 소주를 무지막지하게
먹으며 이건 삶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체크카드에 돈이 없어서
계산조차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사이다 한 병을 이모는 건냈었지.
사이다의 탄산이 내 몸의 피와 조화를 이뤘을 때 이윽고 우리는 그곳에서
당당히 걸어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로 25살이 되어 패기와 열정은
정확히 반 오십의 서글픔을 대변하듯 상당히 줄어있었다.  그리고 간만에 아주 간만에
그곳에 갔다. 이모들은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고 수없이 남은 탕수육을 건내주며 많이 컸구나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을 것만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다만.... 그곳이...변한건......
더 이상 담배를 물며 수없는 예술가들의 모방을 할 수 없었음을 나는 너희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야탑뿅전

                                                                      - 박정우,『페북허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