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러 라이브' |
우선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현재 대다수의 대중들이 열광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집어내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탈(脫)'의 개념인데, 즉, 탈권력적인 요소와 탈복잡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의 물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권력에 대해서 진절머리가 났을터. 또한 세상에 좋은 것들이 너무나도 넘처나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이 미덕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이미 복잡하고 어려운 것에 대해서 실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속에서 탈권력의 모습은 이렇게 나타난다. 우선은 이 영화의 배경 자체가 여의도라는 점을 볼 수 있다. 여의도에는 국회가 있고, 이를 배경으로 마포대교와 언론사가 무너진다. 이는 일종의 배경의 설정과 영화의 플롯 구성에 있어서 이미 현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불신을 기저에 깔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방송국 앵커 영재(하정우분)은 권력측에 있거나 혹은 스스로 권력이 되고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가 처음 테러범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런 미친놈이 어딨어"라고 반응을 나타낸다. 이는 스스로가 갖고 있는 권력의식의 틀로 타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정, 일종의 폭력을 행사하는 셈인데, 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기제가 발설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말미에 주인공 영재는 스스로가 폭탄 스위치를 눌러 테러범이 됨으로써 스스로의 권력의식은 산산이 해체 된다.
또한 영화의 구성은 지극히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의 최대의 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는 부분인데, 즉, 속도감에만 집중을 하고 그 외의 불필요한 요소들은 모두 배제하였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전려경 프로듀서의 말이다. 이를 참조하면, 이해가 조금 더 쉽게 될 것이다.
"원래 이 영화의 시나리오엔 테러범의 공범도 등장합니다. 우린 스스로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스물 두살짜리 남자가 어떻게 폭탄을 구했으며, 마포대교와 건물 폭파가 어떻게 혼자서 가능한가'라고요. 원래 폭탄을 어떻게 구했고, 공범도 있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린 그걸 다 걷어냈어요. 그게 있으면 논리적으로 설명은 되지만, 영화의 생명은 속도감이거든요. 속도를 늦추면서 논리성을 갖추는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선택과 집중이죠"
'탈(脫)'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수많은 철학자들 중 나의 뇌리 속에 가장 먼저 스친 철학자는 질 들뢰즈이다. 그는 스스로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비판적인 글, 즉 <감각의 논리>에서 베이컨의 그림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피력해나간다. 들뢰즈는 당시의 세태에 대해서 일정의 규정이라는 것을 비판하였다. 일종의 규정의 행위자체에 대해서 부정을 한 것이다.즉 혼돈의 시대에서 이를 단순화 편리화 하기 위해 인류는 신, 자유의지, 이성라는 것을 찾아 해매었고 일종의 규정을 했다. 그리고 이미 고정된 것으로 또 다른 규정을 해온 것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행위는 전혀 무의미한 행위라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새롭게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개념창조'인데, 일종의 유목의 철학, 내재성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 기저를 바탕으로 '예술은 감각-정서'의 구현이라고 주장한 들뢰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있어서 감각-정서의 실현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면 규정된 실체되는 없다. 베이컨의 자화상에서는 일반적인 자화상과는 달리 그의 모습은 기괴하게 나타난다. 왜곡되어있고, 정지상태와 운동상태가 뒤섞인듯 하고, 일그러지고 뒤틀려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스스로를 해체하고, 일종의 전통적인 화법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다. 들뢰즈는 이렇게 해체되는 것을 '아플라(aplat)'라고 이야기한다. 즉 베이컨의 그림에서는 아플라가 존재하고 일종의 형상은 모두 지워지며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과는 달라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들뢰즈는 "감각은 심층에서 방출된다"고 이야기 했으며 베이컨은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베이컨의 자화상에 같은 경우는 자신의 밑바탕에서 올라온 감각이 일종의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형태, 즉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영화 '더 테러 라이브'와 질 들뢰즈의 철학,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자 했고,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르네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명제의 발언 이후 흘러왔던 이성에 의해서 모든 것이 규정된 역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 - 자화상 |
질 들뢰즈 |
프란시스 베이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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